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 (문단 편집) == 국호 == 당대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로마니아'[* '로마인의 땅', 의역하자면 로마國이라는 의미이다. 로마市와의 혼동 여지를 없애려고 이런 명명법이 통용되었다.]라 불렀고, 법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Imperium Romanum[* '로마의 통치권', 의역하자면 '로마 제국'이다.]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당대에 이미 '비잔티움', '동로마'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오해가 많지만 당대에도 엄연히 쓰인 이름이다. 가령 10세기 편찬된 백과사전 ⟪수다⟫{{{-2 ''Souda''}}}에서는 5세기 역사가인 프리스쿠스가 ⟪비잔티움의 역사⟫{{{-2 ''Istoria Byzantiakē''}}}라는 역사서를 저술했다고 언급한다. 프리스코스가 정말로 이런 제목을 썼는지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아무리 늦게 잡아도 10세기엔 이 나라의 별칭으로서 '비잔티움'의 용례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프리스코스의 원본은 현전하지 않으나,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예니토스{{{-2 (Kōnstantinos VII Porphyrogennētos, 재위 913-59년)}}}의 ⟪역사서의 발췌⟫{{{-2 ''Excerpta Historica''}}}에 남아있는 내용을 보면, ⟪비잔티움의 역사⟫{{{-2 ''Istoria Byzantiakē''}}}는 로마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로마인을 '동로마인'과 '서로마인'으로 구별한다.] 어떤식으로든 서로마와 구별되는 동로마를 구별해야할 실용적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습적 구별법은, 한국사에서 [[삼국통일]] 이전의 [[신라]]와 이후의 [[통일신라]]가 공식적으로는 쭉 이어진 같은 신라 왕조였지만 시기에 따라 국가의 성격이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에[* [[실효지배]]하는 범위의 [[영토]]와 [[인구]], 삼국을 통합한 정권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 구분하는 것과 유사하다. 중국사의 경우에는 [[북송]]과 [[남송]], 유럽사에서는 [[서독]]과 [[독일]][* 공식적으로는 분단시대나 통일 이후나 같은 독일연방공화국이고, 통일은 동부지방의 주들(=동독)이 연방에 각자 추가 가입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러시아사에서는 [[루스 차르국]]과 [[러시아 제국]]이 그런 케이스다. 또한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은 엄밀히 말하면 '제국의 분열'이 아니라 '통치권{{{-2 ''Imperium''}}}의 분할'로 봐야 정확하다. 통상 제국{{{-2 (帝國)}}}이라는 한자어로 번역되는 Imperium은, 1차적으로는 공간적 의미의 국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통치권, 지배, 권세 등을 의미한다.[* 이는 통상 왕국{{{-2 (王國)}}}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Basileia도 마찬가지다. Basileia는 '왕의 다스림', '왕정', '왕권'을 의미한다.] 곧 로마市가 서부의 통치권{{{-2 ''Imperium''}}}을 거머쥐고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동부의 통치권{{{-2 ''Imperium''}}}을 거머쥐어도 '제국'이 2개 있는 게 아니라 '통치권'{{{-2 ''Imperium''}}}이 2개 있는 것일 뿐이다.[* 오늘날의 국가관념이나 동아시아의 종묘사직 개념을 로마에 적용해서 생각하려니까 자꾸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유럽 문명은 도시{{{-2 ''Polis''}}} 중심의 문명이고, 여기서 도시 로마가 다른 도시들을 나와바리로 만든 것이 '로마의 통치권'{{{-2 ''Imperium Romanum''}}}이다. 그렇기에 로마시의 이 통치권{{{-2 ''Imperium''}}}을 둘로 쪼개더라도 똑같은 '로마의 통치권'{{{-2 ''Imperium Romanum''}}}인 것이다. 후대의 신성로마제국 역시도, 이렇게 이해하여야 한다. 역덕후들의 희화화와 달리, 신성로마제국은 스스로를 로마國과 분명하게 구별하였고, [[샤를마뉴]]도 [[오토 대제]]도 자기를 로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로마가 마지못해 프랑크에게 인정하였던 것도 "당신들은 로마인입니다"가 아니라 "{{{-2 (아니꼽지만)}}} 당신들은 서방의 통치권을 가졌습니다"였다.] 당대 로마인들에게 동서로마의 분할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둘로 나누어 복수의 황제가 다스린 개념이었고, 그들에게 분할은 서기 3세기 [[발레리아누스]], [[갈리에누스]] 부자의 협동황제 개념을 발전시킨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로마법, 국제 개혁 중 [[사두정치]]의 연장선이었다. 쉽게 말하면, 서기 4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때 로마법과 국제상 물리적으로 드넓은 제국을 복수의 황제가 각자 임페리움을 통해 협치 개념으로 복수의 정부로 통치하는 통치방법이었다. 따라서 395년 동서로마 분할로 알려진 시기 이후의 속주관할권 재편 역시 별개의 국가가 이를 놓고 협상을 벌인 국제적 외교가 아니었고, 로마 제국은 15세기까지 존속했다. 이런 이유로 정확히 어떤 시기에 '비잔티움 제국'이 성립되었는지 말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로마 제국과 같은 국가를 학문상 개념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짐작되듯, 학설과 관점에 따라 동로마 제국이라는 정부가 언제 생겼다고 말하기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애당초 기원전 753년 건국된 로마 제국이 동쪽에서 수도만 바뀐 채 살아있는 상황에서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건국됨' 같은 정석적인 루트가 아니다. 그럼에도 학문상 비잔티움 제국, 동로마 제국으로 구분해 설명할 경우, 대체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년 ~ 337년)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인정하고 330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창건하고 수도로 삼은 이후의 제국을 다수설, 통설적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